2011년 2월 13일 일요일

디지털시대, 더 잘나가는 아날로그 기업 `몽블랑`



"스마트폰으로 사인은 못하죠"


▲ 그래픽= 김의균 기자 egkim@chosun.com"디지털 시대 아날로그 기업의 생존 비결이요? 바로 오랜 역사를 가진 기업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치와 정서가 깃든 제품일 겁니다."

올해로 106년째를 맞는 독일 필기구 회사 몽블랑(Montblanc)의 CEO인 루츠 베이커(Lutz Bethge) 회장은 Weekly BIZ와의 인터뷰에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 같은 수많은 디지털 기기가 쏟아져 나오지만, 그것이 대체할 수 없는 게 있다"고 말했다.

"가령 두 나라 대통령이 오랜 전쟁을 끝내는 평화 협정을 조인한다고 칩시다. 그러면 어떻게 서명할까요? 요즘 유행하는 스마트폰으로 할까요? 아닐 겁니다. 왜냐면 서명 행위 자체는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가치를 지니는 하나의 상징이자 권력, 약속, 위엄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190㎝의 큰 키에 걸맞은 우렁찬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감정은 아직까지 펜으로 쓸 때 잘 전달됩니다. 요즘은 사랑의 메시지도 이메일로 보내죠. 손가락으로 톡 치면 그만입니다. 손가락 하나면 메시지를 지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특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직접 써서 건네는 편지의 의미는 각별합니다."

베이커 회장은 독일 생활용품업체인 에펨(Effem)에서 근무하다 1990년 몽블랑의 법무·재무 담당 이사로 영입됐다. 몽블랑으로 옮기기 몇 달 전 그의 아내가 몽블랑의 명품 만년필인 '마이스터스튁(Meisterst�jck)'을 생일 선물로 줬다. 그 만년필은 그가 최고재무책임자(CFO)와 전무를 거쳐 2007년 이후 CEO로 재직하는 지금까지도 늘 그와 함께했다. 그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검은색 마이스터스튁을 꺼내서 서울 신라호텔 미팅룸의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이 만년필을 선물 받기 전까진 펜을 거의 매일같이 잃어버리곤 했어요. 그래도 아쉽지 않았죠. 다음날이면 다른 것을 구할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이 만년필은 다릅니다. 이젠 저는 만년필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여기엔 필기구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저와 집사람의 특별한 관계의 상징이고, 하나하나 손수 만든 장인(匠人)들의 땀이 배어 있으니까요."



▲ 오종찬 기자 ojc1979@chosun.com베이커 회장이 말하는 3대 비결
①고급화 - 기능위주 저가 제품 생산중단 고가 프리미엄 만년필로 승부
②세계화 - 중국시장 첫 진출… 활로 찾아
③인접사업으로 확장 - 手製 시계시장서도 위치 확보

몽블랑은 2000년대 들어 연평균 10% 정도씩 꾸준히 성장했다. 금융위기 한파를 겪었던 2009년엔 5억8700만유로(약 9000억원)의 매출을 올려 전년에 비해 매출이 6.1% 줄었지만, 2010년 4~9월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27.3% 급증했다. 매출의 절반 이상을 필기구에서 올리고 있고, 30% 정도를 가죽지갑, 10% 정도씩을 시계와 보석 사업에서 각각 거두고 있다.

디지털 시대 몽블랑의 생존 원칙은 역설적이다. 아날로그적 가치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 원칙하에서 세 가지 전략을 폈다. 고급화와 세계화, 인접 사업으로의 확장이 그것이다.

베이커 회장은 전임 CEO들에게 고마운 게 많다고 했다. 앞을 내다보고 현명한 결정을 미리 내렸기 때문이다. 디지털 시대의 도래를 내다보면서 제품의 프리미엄화에 집중한 것이다. 저가(低價) 제품 생산을 중단하고, 고가 프리미엄 만년필인 마이스터스튁 시리즈에 집중했다.

"디지털 시대에는 짧은 시간에 값 싸게 대량 생산하는 방식으로 경쟁력을 갖기는 어렵다고 본 것이죠. 그래서 기능 위주의 제품 생산을 중단한 겁니다. 기능이 아니라 권한과 라이프스타일, 성공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만든 것입니다. 이를 통해 디지털 시대의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세계화는 베이커 회장의 재임 기간 중에 급물살을 탔다. 몽블랑이 중국 시장에 처음 진출한 게 1990년대인데, 지금은 48개 도시에 100개의 매장이 있다. 개인 매출 기준으로 중국은 2008년에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시장이 됐다. 그는 정확한 수치를 밝히지 않았지만, 중국시장은 전체 매출의 10~20%를 차지한다고 했다. 17개의 매장을 둔 인도 역시 급성장하고 있다.

"제가 놀라고 있는 것은 속도입니다. 아무리 중국이 빠르게 성장해도 미국을 제치는 것은 2010년이나 2011년쯤일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보다 몇 년이 더 빨랐어요."

제품 다각화도 그의 재임 기간 중에 적극적으로 추진됐다. 몽블랑은 1997년 수제(手製) 시계시장에 진출했다. 제품의 질도, 역사도 경쟁사에 떨어져 한동안 고전했지만, 베이커 회장은 굴하지 않고 투자를 계속했다. 몽블랑을 만들어온 장인 정신과 전통이라면 명품 시계에도 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2008년엔 시계의 핵심 부품인 무브먼트(구동장치)를 포함해 100% 자체 생산 시스템을 갖췄고, 2007년엔 150년 전통의 스위스 수제 시계회사인 미네르바를 인수했다. 미네르바는 몽블랑의 고급 시계 컬렉션인 '밀르레 1858' 컬렉션만을 제조하고 있다.

몽블랑 시계의 광고 슬로건은 '시간의 기록자(Timewriter)'이다. 시계는 시간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광의(廣義)의 필기구인 것이다.

"몽블랑의 경쟁 상대? 사랑을 표현하는 모든 럭셔리 브랜드"
아들에게도 만년필 선물… "네 운명을 스스로 쓰라"


베이커<사진> 회장은 "짧은 시간에 싸게 많이 만드는 것은 우리가 지향하는 가치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런 식으로는 디지털 제품과 승부할 수 없다고도 했다.

―몽블랑 제품은 기획과 생산 과정이 어떻게 다릅니까?

"만년필의 경우 100개가 넘는 공정을 거칩니다. 상당 부분이 전문가들의 수작업으로 진행되죠. 공장을 방문해보면 제가 보기엔 아무 이상이 없는 제품을 파기하는 것을 종종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왜 그러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돋보기를 하나 가져다주더군요. 자세히 들여다보니 과연 미세한 흠집이 보였습니다. 세계적인 기업의 명성을 유지하는 데는 이러한 장인(匠人)들의 열정과 정성이 절대적입니다."

■고객이 20년 후에도 제품을 자랑스러워 할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새로운 만년필이나 시계의 시제품이 완성되면 그는 디자이너들을 모아 놓고 테이블에 제품을 올려놓은 뒤 늘 똑같은 질문을 하나 한다고 했다. "20년 후에도 고객들이 이 제품을 자랑스러워 하겠는가"라고.

"몽블랑은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클래식한 디자인을 추구합니다. 그렇다고 젊은이들의 시장을 포기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것은 젊은이들을 겨냥해 팔더라도 한때의 유행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사랑받는 상품을 만드는 것이죠. 유행은 단기적이고 일시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소비자가 10년 이상 만족하며 쓸 수 있는 제품을 만들자는 우리의 가치와는 상충됩니다."

―젊은 세대는 '몽블랑'보다는 '구글'이나 '애플'이란 브랜드에 더 친숙할 것 같습니다. 몽블랑 브랜드를 유지하기 위해 광고나 마케팅 측면에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젊은 세대가 아이폰이나 컴퓨터에 둘러싸여 자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제 아이들도 16세, 19세인데, 이런 기기들에 아주 익숙하죠. 제가 자라던 때와는 아주 다른 것 같아요.

그렇지만 부모님이 제게 물려주신 가치는 자식 세대에도 전달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아이들이 디지털 기기에 빠져 있긴 하지만, '이 펜은 내가 20년 동안 쓴 것인데 너에게 물려주려고 한다'고 말하면 아주 놀랄 겁니다. 요즘 아이들에게도 아빠가 20년 이상 사용한 제품이라는 느낌은 남다르게 다가오는 것이지요."

그는 장남 알렉산더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만년필을 하나 사줬다. 작은 박스에 넣고, 직접 쓴 카드도 함께 넣었다. 카드엔 '네 운명을 스스로 쓰라(Write your own destiny)'고 썼다.

■몽블랑의 경쟁자는 '사랑을 표현하는 모든 수단'

―몽블랑의 경쟁자는 누구입니까?

"기본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모든 수단'입니다. 일생의 동반자나 사업 파트너에게 고마움을 표하고, 얼마나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표현하기 위해서 주는 것들입니다. 그런 의미에선 사실상 모든 럭셔리 브랜드가 경쟁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몽블랑이란 회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역사와 열정이겠죠. 몽블랑의 어느 제조시설을 가도 느끼게 되는 것은 직원들의 자부심입니다. 그들은 단순히 제품을 제조하는 게 아니라 '브랜드를 만든다'고 말합니다. 몽블랑 제품을 만드는 데서 대단한 열정과 보람을 느끼는 것이지요."

베이커 회장은 20대 중반 독일 함부르크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한 이후 '직장이란 2년 정도 근무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특히 미국 회사들에서 일할 때는 2년이면 직장을 옮기곤 했다. 몽블랑에 입사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는 22년째 몽블랑에서 일하고 있다.

―직원들에게 열정과 자부심을 불어넣는 다른 비결이 있습니까?

"물론 저희는 직원들에게 보너스를 주고 연금도 줍니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직원들이 회사의 성공에 기여를 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겁니다. 보스가 모든 결정을 하는 게 아니라 현장에 있는 직원 스스로가 성공을 만들어 나가는 느낌을 갖도록, 직원들의 자발적 참여와 주도로 일이 이루어지게 해야 합니다. 직원들이 스스로 자기 몫을 했다고 느끼게 만들어야 합니다. 몽블랑 100년 역사도 이런 정신이 밑바탕이 돼 유지돼 왔습니다. 사람은 일생의 대부분을 일을 하며 보냅니다. 따라서 일을 즐겨야 합니다. 그러면 일을 더욱 효율적이고 성공적으로 할 수 있게 됩니다."




☞ 몽블랑(Montblanc)은

독일의 세계적인 필기구 브랜드. 1906년 독일 함부르크(Hamburg)에서 문구상과 은행가, 엔지니어 세 사람이 모여 설립했다. 만년필과 볼펜이 주력이지만, 이 밖에 시계와 지갑, 벨트, 가방, 향수, 아이폰 케이스까지 다양한 액세서리를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1924년 출시돼 지금도 판매되고 있는 '마이스터스튁(Meisterst�j ck)' 만년필이 대표 상품이다. 1977년 영국의 던힐(Dunhill)에 인수됐다가, 1988년 던힐과 함께 스위스 리슈몽(Richemont·카르티에 등의 유명 브랜드를 보유한 명품회사)그룹 소유가 됐다.

[출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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