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28일 일요일

위안화 저평가의 최대 수혜자가 누군데… "미국은 그 입 다물라"

[Weekly BIZ] 위안화 저평가의 최대 수혜자가 누군데… "미국은 그 입 다물라"



진 독일 뮌헨대 교수
"저축 안하는 미국인들, 외국 돈으로 분수에 넘치게 살다가 금융위기 불러와"
아메리칸 드림'에서 깨어나라



"미국이 중국을 놓고 '뭔가 잘못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이야기입니다. 사실 위안화 저평가의 가장 큰 수혜자는 미국이니까요."

이게 무슨 이야기인지? 지금 미국은 중국 위안화의 가치가 지나치게 낮다며 위안화 절상을 요구하고 있고, 여기에 중국은 발끈해서 이른바 '환율 전쟁'이 벌어지는 와중이 아닌가? 그런데 위안화 가치가 낮은 게 오히려 미국에 도움이 됐다니?

한스-베르너 진(Sinn·사진) 독일뮌헨대 교수의 미간이 찡그려지더니 목소리가 살짝 높아졌다. 독일을 대표하는 경제학자 중 한 사람인 그의 설명이 이어졌다.

미국인의 고급 삶은 저렴한 중국산 상품 덕분

"다시 말해 위안화가 저평가돼 있었기에 해외의 자본이 미국으로 흘러갈 수 있었고, 미국인들은 저렴한 중국산 상품을 향유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미국인이 높은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은 상당 부분 중국이 제공했다는 겁니다. 막대한 자본 수출과 함께 중국산 제품들을 터무니없이 값싸게 공급해서 말이죠. 이로 인한 이득은 누가 챙겼습니까? 중국 노동자들은 겨우 먹고살기도 힘든 수준의 임금을 받았지만, 미국 소비자들은 중국산 상품을 거의 공짜나 마찬가지로 소비할 수 있었죠."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이 있다. 미국의 시각은 '글로벌 불균형(global imbalance)론'으로 대표된다. 미국처럼 늘 적자를 보는 나라가 있는 이유는 다른 한쪽에 늘 흑자를 보는 나라(중국·독일 등)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책임은 양쪽 모두에 있다는 것이다. 흑자국은 통화 가치를 높여서 수출을 줄이고 수입을 늘려야 한다.

물론 이런 설명에 흑자국들은 펄쩍 뛴다. 일하지 않고 놀면서 펑펑 쓰기만 한 베짱이가 잘못이지, 왜 한여름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일하고 아껴서 먹이를 모은 개미가 잘못인가. 바로 이런 기본 철학의 차이 때문에 G20 서울 정상회의도 경제위기 극복 방안에 시원스러운 답을 내놓지 못한 채 끝나고 말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경제 칼럼니스트인 마틴 울프(Wolf)가 글로벌 불균형론을 대표하는 이코노미스트라면, 진 교수는 그 반대편에서 독일과 중국을 비롯한 흑자국의 입장을 대표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최근 ≪카지노 자본주의≫라는 저서를 통해 베짱이와 다를 바 없었던 미국의 정치·경제시스템을 '도박판'이라고 비판했다. 유럽중앙은행의 장 클로드 트리셰(Trichet) 총재는 이 책을 금융위기에 관해 읽은 책 중 최고 걸작이라고 했다.

진 교수는 미국인들이 중국에 진짜 바라는 것은 따로 있다고 말했다. 위안화 환율은 핑계일 뿐이란 것이다.

중국이 美채권 안 사준 이후 미국이 뿔내기 시작

"미국인들이 지금 불안해하고 있는 이유는 중국이 미국에서 벌어들인 달러를 더 이상 미국으로 보내주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중국은 매달 200억달러 이상의 미국 채권을 사줬는데, 최근 이를 완전히 멈췄습니다. 올 들어 보면 오히려 마이너스입니다. 기존에 갖고 있던 달러화 채권을 팔고, 다른 나라 채권을 사고 있죠. 미국을 정말 화나게 만드는 것은 이것입니다."

독일 진 교수의 '미국 때리기'

한스-베르너 진 교수(Hans-Werner Sinn·62)는
재정학과 거시경제학 분야의 권위자로 미국 스탠퍼드와 프린스턴 대학, 영국 런던정경대학(LSE) 등에서 교수 활동을 했다. 독일 경제학자 중 가장 논문이 자주 인용되는 학자 중 한 사람이다. 정부의 역할보다 시장의 자율성을 더 중시하는 신고전학파(Neoclassical)에 속하면서, 시장은 스스로를 규제할 수 있는 힘이 부족하므로 정부가 제도적 틀을 잘 만들어줘야 한다는 이른바 질서자유주의(ordoliberalism)를 표방한다.

―만약 중국이 미국에 계속 투자한다면 환율 전쟁도 해소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요?

"그렇겠죠. 만약 중국이 미국에 앞으로도 더 돈을 댈 생각이 있다면 말이죠. 하지만 미국은 이를 허용하지 않을 겁니다. 중국은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이런 시도를 했습니다. 미국 기업들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말이죠. 그러나 안보상의 이유로 이러한 투자는 번번이 봉쇄됐습니다. 미국이 중국에 허용한 유일한 방법은 미국 채권을 사게 만든 겁니다. 하지만 채권은 채권일 따름입니다. 그냥 돈을 갚겠다는 약속이 적혀 있는 종이 쪼가리에 불과해요. 그것도 미국이 인플레이션을 일으키면 순식간에 가치가 날아가는 거죠. 중국은 더 이상 이런 게임을 하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한스-베르너 진 교수가 소장으로 있는 뮌헨대 경제연구소(CESifo)는 뮌헨의 한적한 주택가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었다. '유럽에서 가장 바쁜 경제학자'라는 명성답게 그는 아침부터 세미나와 학술회의, TV 인터뷰 등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던 중이었다. 그는 한국 언론과의 대면 인터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미국에 매우 비판적인 그의 논리는 영미 언론의 단골 메뉴인 글로벌 불균형론에 익숙해진 기자에겐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의 견해는 독일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고, 중국의 입장과도 대동소이하다. 흑자국이라는 한 배를 탔기 때문일까.

그가 보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은 매우 간단하다. "미국인들이 스스로 저축한 돈이 아닌 남에게서 빌린 돈으로 분수에 넘치는 생활을 했기 때문입니다. 미국인들은 실질 임금이 별로 늘지도 않는 상황에서 흑자국이 수출한 자본을 낮은 금리로 싸게 빌려 집도 사고, 차도 샀습니다."

진 교수의 목소리가 다시 높아졌다. "하지만 미국인들이 더 이상 자기 분수에 넘치는 생활을 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습니다. 미국인은 이제 '아메리칸 드림'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그의 말은 파랗게 날이 선 칼 같았다. 그는 미국이 지금 처한 입장을 약(藥)을 먹는 것에 비유했다.

"미국은 지난 수십 년간 계속 자본 수입이란 약을 먹어 왔습니다. 그렇게 계속 약을 먹다가 보면 더 이상 약에 의존할 수 없는 때가 오게 마련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천천히 약을 줄이는 것 외엔 답이 없습니다. 생존을 위해서는 고통스럽더라도 약을 줄여야 합니다."

수입이 늘지도 않았는데 돈 빌려 집 사고, 車 사고…결국 부실대출로 위기 와
미국은 지난 수십 년간 '자본수입'이란 藥 먹어와…이젠 藥 줄일 때가 왔다
생존 위해선 고통 감내해야…

■미국이 사는 유일한 방법은 '약을 덜 먹는 것'

그는 "글로벌 불균형론은 미국인들의 정치적 선전"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항상 막대한 경상적자와 막대한 자본 수입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아왔습니다. 세계에 저축은 넘쳐 나는데, 좋은 투자 기회는 별로 없었다. 그런데 미국이 관대하게도 해결책을 마련해 줬다는 겁니다. 즉 전 세계의 저축이 미국의 우수한 경제 시스템으로 쏟아져 들어와 더 높은 투자 수익을 누릴 수 있도록 해줬다는 거죠.

하지만 진실은 무엇일까요? 미국인들이 저축을 중단했다는 것입니다. 1980년대 10%대였던 미국의 저축률은 이번 금융위기 직전 거의 제로(0)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만약 어떤 나라가 저축을 하지 않으면 투자자와 정부는 어디서 돈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결국은 외국에서 빌려 올 수밖에 없겠지요.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문제의 근원이 세계 다른 나라들의 과잉 저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국내 저축이 부족했던 겁니다."

진 교수는 이번 금융위기의 직접적 원인인, 부실 주택담보대출 문제 역시 미국이 분수에 넘치는 생활을 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정책은 이를 부추겼다. 예를 들어 2005년 부시 행정부는 '미국인은 누구나 내 집을 가질 권리가 있다'면서 서민들의 주택 구입을 장려했다.

이런 상황은 당시 은행의 요구와도 맞아떨어졌다. 그린스펀이 문을 연 저금리 시대를 맞아 은행들은 고수익 투자처를 찾고 있었고, 주택담보대출은 중요한 돌파구였다. 서브프라임모기지(신용등급이 낮은 사람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같은 위험한 대출이 이런 상황에서 등장했다.

"그런데 미국의 금융 시스템에는 또 다른 문제가 있었습니다. 미국의 주택 소유자들은 다른 나라의 주택 소유자들과 달리 빌린 돈을 모두 갚아야 할 책임을 지지 않은 채 돈을 빌릴 수 있었습니다. 집값이 대출액 이하로 떨어지면 집만 은행에 넘기고 그냥 빠져나가면 됩니다. 소위 주택 소유자들의 '유한 책임(limited liability)'과 결부된 문제가 있었던 겁니다. 그러니 다들 겁 없이 대출을 받아 집을 살 수 있었던 겁니다."


美, 막대한 적자의 원인을 獨·中 등 흑자국에 떠넘겨…앞으론 달러가치 끌어내려 대외부채 줄이려 할 수도…
세계 경제 위기의 해법은 적자국이 대가 치르는 길 뿐, 재정 긴축하고 저축 늘려야…

■고통 없인 불균형이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독일, 일본, 중국 같은 흑자국들이 미국과의 무역 거래를 통해 큰 이득을 본 것도 사실이지 않습니까?

"문제는 결국 그 돈이 다시 외부로 빠져나갔다는 겁니다.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독일이나 일본, 중국 같은 경상수지 흑자국에서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로 과도한 자본 수출이 이뤄졌으며, 결국 아메리칸 드림의 판돈을 댄 것과 마찬가지라는 겁니다.

과도한 자본 수출의 결과로 흑자국 중 일부는 심각한 경기 침체를 겪었습니다. 일본도 침체를 겪었고, 독일도 침체를 겪었죠. 특히 독일의 경우는 자본의 유출이 경기 침체를 초래한 중요한 원인 중 하나였습니다. 독일은 금융위기 이전 15년 동안 GDP 대비 투자 비중이 가장 낮은 나라였습니다. 무역 흑자로 쌓인 돈이 독일 경제에 투자된 것이 아니라 글로벌 금융시스템을 통해 해외로 수출되어 버렸으니까요. 이로 인해 독일 경제는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유럽에서 두 번째로 경제 성장률이 낮았죠.

정체된 경제로 인해 물가와 임금은 상대적으로 더디게 올랐습니다. 그런데 이는 독일 경제의 수출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졌고, 수출 증가로 인한 경상수지 흑자를 초래했습니다. 역설적이지 않습니까?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가 독일 경제의 요소 비용(물가와 임금 등)을 싸게 만든 약한 경제의 결과란 겁니다. 사람들은 이 부분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FT의 마틴 울프 같은 사람은 이런 해석을 싫어하죠. (웃음)"

―이번 금융위기의 가장 큰 희생자는 유럽이라는 시각이 있는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은 역시 미국이죠. 미국은 지금 과도한 정부 부채로 인해 매우 낮은 경제 성장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은 정말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게 될 겁니다.

물론 유럽이 재정위기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유럽 전체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일부 유럽 국가들의 문제입니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아일랜드를 비롯해 그리스·스페인·포르투갈 등 미국처럼 과거에 외국에서 자본을 수입해 온 나라들이죠.

이들 국가들은 외국에서 자본이 무한정 흘러들어오는 동안 재정을 함부로 써댔습니다. 그때는 돈이 지천에 널려 있어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럴 돈이 없습니다.

일부 국가들이 고통을 겪는 상황은 전 세계적 현상입니다. 세계는 지금 승리자와 패배자로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금융위기 이후 자본이 흑자국에서 적자국으로 흐르고 있지 않기 때문이죠. 새로운 승리자는 자본 유출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던 과거의 흑자국들입니다. 반면 빚이 과다한 국가들, 과거에 막대한 자본을 수입한 국가들,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를 낸 적자국들은 패배자가 되고 있습니다."

■미국을 더 이상 도울 길은 없다

―이러한 글로벌 불균형 문제에 대한 해답은 뭡니까.

"이미 저절로 변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외부로 흘러가는 자본의 흐름이 멈추면서, 독일 경제는 인플레이션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점차 경쟁력을 잃고 있습니다. 반면 다른 유럽 국가들은 디플레이션을 겪으면서 상대적인 경쟁력이 회복되고 있지요.

이는 앞으로 벌어질 일들의 시작입니다. 지금 세계 경제의 무게 중심이 앵글로 색슨 국가들로부터 아시아 국가들로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세계 경제의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인위적인 경기 부양 역시 점차 바로 잡히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 과정은 고통스러울 겁니다."

―미국인들이 고통스러운 조정 과정을 견뎌낼 수 있을까요? 당장 유럽만 해도 연금을 줄이겠다고 하자 각국의 노동자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시위를 벌이고 있지 않습니까?

"미국이 대단히 고통스러운 시기를 보낼 것이며, 누구도 이를 바꿀 힘이 없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중요한 것은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도 앞으로 많은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란 점입니다. 미국은 달러화 가치를 떨어뜨림으로써 대외 부채를 줄일 수 있습니다. 다른 나라와 달리 미국의 빚은 모두 (자국 화폐인) 달러 표시 채권이니까요. 이 경우 달러화 가치 절하에 따른 손실은 이미 돈을 빌려준 나라의 몫이 됩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많은 희생을 치렀습니다. 우리가 미국에 빌려준 돈이 금융위기로 인해 돌아오지 않고 있으니까요. 금융위기와 관련된 CDO(부채담보부증권)나 이와 비슷한 파생 상품들은 한때 모두 트리플A(AAA) 등급이었지만, 위기 이후 그 총 가치가 명목 가치의 40% 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우리는 이것만으로도 이미 미국을 충분히 도운 셈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습니다."

※편집자 주: 한스-베르너 진 교수는 글로벌 불균형론에 반대하는 논객입니다. 글로벌 불균형론자들의 주장을 보시려면 Weekly BIZ 9월 4일자 마틴 울프(Wolf) FT 수석 경제평론가와의 인터뷰 기사를 참고하십시오.



뮌헨(독일)=정철환 기자 plomat@chosun.com

입력 : 2010.11.27 03:00



출처 : http://blog.naver.com/spp0805/120119234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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